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세스 그레이싱어 (문단 편집) === 메이저리그 시절 === [[버지니아 대학교]]를 다니던 시절 애틀랜타 올림픽 [[미국 야구 국가대표팀]]에 선발되어 3경기에 선발로 뛰며 대회 공동 다승왕 에 해당하는 3승을 거두어, 미국 대표팀이 동메달을 획득하는데 기여했다. [[1996 애틀랜타 올림픽/야구|당시 한국 대표팀]]과의 경기에서 선발투수로 등판해 승리투수가 되기도 했다. 미국 국가대표팀에 자주 뽑히며 [[짐 애보트]] 등이 갖고 있던 당시 미국 야구 국대 다승 기록(8승)을 뛰어넘는 9승을 기록하는 등 빛나는 대학 시절을 보냈다. 1996년 MLB 신인 드래프트에서 [[디트로이트 타이거즈]]의 1라운드 전체 6순위 지명을 받으며 입단했고, 구단은 그레이싱어를 루키리그가 아닌 더블A로 바로 보내며 기대감을 드러낼 정도로 거물 유망주였다. 드래프트되자마자 마이너에서 공 한 번 안 던진 그레이싱어를 베이스볼 아메리카 지가 디트로이트 팀내 2위 유망주로 선정했을 정도. 1998년 처음 메이저리그에 콜업되어 21경기에 선발 등판, 6승 9패 평균자책점 5.12의 성적을 냈는데, 특히 후반기에 갈 수록 좋아지는 모습을 보였다. [[스테로이드 시대]]의 한가운데인 [[타고투저]]의 시대였던데다 디트로이트가 약체 팀이었던 만큼 저 정도로도 로테이션 한 자리는 차지할 수 있었고 충분히 장래성이 기대되었지만... 대학 시절부터 쉼 없이 던졌던 그의 팔꿈치는 곧바로 탈이 났고, [[토미 존|토미존 서저리]]와 어깨 수술을 2번이나 받으며 그 시즌 이후 2001년까지 12.1이닝을 던지는데 그쳤다. 재활 후 2002년 다시 복귀하여 그해 5월 13일, 당시 [[텍사스 레인저스]] 소속이었던 [[박찬호]]와 선발 맞대결을 펼치기도 했다. 이긴 쪽은 5이닝 1실점의 [[박찬호]]. 2004년에는 [[미네소타 트윈스]]로, 2005년에는 [[워싱턴 내셔널스]] 스프링 캠프에 초청선수 자격으로 참가했지만 메이저리그 진입에 실패, [[애틀랜타 브레이브스]] 산하 트리플A 팀에서 잠시 뛰게 된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